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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스무살 + 스무살

mind-minder 2015. 12. 17. 23:41

지난 주 네이버 메인에 슈가맨이란 프로그램에서 정재형이 故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부르는 영상이 걸려 있어 보고는 오랜만에 원곡이 듣고 싶어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보았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서지원이 라이브로 부른 버전이나 뮤직 비디오 영상이 없어 이상하다 생각하며 네이버 프로필을 보는데 아... 앨범 녹음을 끝내고 앨범이 나오기 전에 사망했구나. 프로필을 보니 사망일이 만 스무살이 되기 직전이어서 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구나란 생각을 하면서 영숙 언니랑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스무살에 세상을 떠난 친구 유리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새 시간이 20년이 훌쩍 흘렀다는걸 깨닫는 순간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가 살았던 인생의 두 배를 내가 살아왔구나. 그랬구나. 20년이 흘렀구나. 


1995년 10월 어느날, 집으로 중학교 때 친구 지연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야, 지연이... 유리가 죽었어.". 믿을 수 없었던 나는 "농담하지마..."라고 하니 "왜 그런걸로 농담을 해. 자살을 했어. 가로공원길 OO 병원 장례식장이야. 유리 어머니가 너무 충격이 크셔서 친구들이 더 오는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어..." 난 "어, 그래 알았어..."라며 멍하게 전화를 끊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엄마가 무슨 전화길래 전화를 그렇게 받느냐고 물어서 "유리가 죽었대요. 자살했대."라고 대답하니 엄마가 "참... 못됐다..." 하신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중학교 동창회에서 만났었거든. 약간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거든. 그리고 그 날 만난 이후에 한 번 전화 통화도 했었다.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는거라고, 또 만나자고. 그리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연락을 받은거였다. 


친척 말고 내가 맺은 인간관계에서 처음으로 간 장례식이 친구의 장례식이라니 너무하잖아. 우린 영정 앞에 앉아 서로 아무말도 못하고 울고 또 울었다. 넋이 나가있는 유리 어머니 모습, 이미 울고 또 울어 눈이 퉁퉁 부어있던 먼저 와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 내 스무살의 가장 큰 상처는 유리였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살은 하지 말자 결심하게 되었던 날이다.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게 너무나 잔인하게 생각되었다.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쾌활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바쁘게 뛰어다니던 중학교 시절의 유리. 같이 몰려다니며 장난치고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이사 간 은주네 집에 놀러가 마루가 넓다며 마루를 굴러 다니던 녀석. 언젠가는 등교길에 강아지가 차에 치어 죽는 모습을 봤다며 학교에 와서 서럽게 울던 마음 여린 녀석. 내 앨범 속 사진에서의 유리는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동그란 안경을 낀 항상 웃는 얼굴이다. 


95년을 지나면서 중학교 때 친구들과는 어느샌가 연락이 소원해졌고 거의 만나지 않게 되었다. 10년 쯤 전에 토익 시험장에서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이 "유리가 있었으면 지금도 연락들 하면서 지냈을텐데."라는 말을 해서 나도 "그러게..."라고 대답했었지. 


서른을 넘어가면서 매년 10월이면 아련하게 생각나던 유리를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 몇 년 된 것 같다. 만으로 나이를 세던 일본에서 돌아와 갑자기 두 살을 더 먹으면서 나이에 대한 강박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살려니 어느샌가 나이를 세는 것을 잊고 살다 보니 이렇게 마흔이다. 스무살에서 20년이 흐른지도 모르고 이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내 한 몸 건사하기 빠듯한 두 번째 스무살이다.